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페준타 제국 (문단 편집) === 현대 === [[제1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되면서 승전국인 유럽 열강들은 제국의 여러 영토를 서로들 가져가려고 했고 특히 동로마 제국의 후계국을 자처한 그리스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처사에 반발한 [[아타튀르크]]가 주도한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그리스와 연합국이 거하게 패하면서 죄다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트라페준타 제국의 후계자들이라 할 수 있던 폰토스 그리스인들 역시 휘말리게 되는데 사실 [[흑해 그리스인|폰토스 그리스인]]들은 본토의 [[그리스 왕국]]에 합병되는 것은 별로 관심없어 했고, [[파리 강화 회의]]에서 "[[https://en.wikipedia.org/wiki/Republic_of_Pontus|폰토스 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연합국은 물론 그리스조차 반대했다. [[베니젤로스]] 총리가 보기에 신생 폰토스 공화국은 그리스 본토에서 너무 멀고, [[튀르키예]]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엔 너무 약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아나톨리아 공격에 따라 벌어진 [[튀르키예 독립전쟁]]의 와중에 폰토스 그리스인들은 독립국을 세우고자 민병대를 일으켰고 인근의 [[튀르키예인]]과 아르메니아 촌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20~50만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과 튀르키예인들이 마구 학살당했다. 결국 [[튀르키예 공화국]] 성립 이후 더 강경해진 반그리스 정책으로 인해 수만 명의 [[그리스인]]들이 살해당하고 폰토스를 포함한 아나톨리아 전역에 거주하던 그리스인 약 150만 명[* 그러나 구분 기준이 종교여서, [[정교회]] 신자면 "너는 [[그리스인]]이니까 추방"식이라 모국어는 [[터키어]]인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콘야]] 남부에 위치한 카라만 지방의 주민들인데, 이들은 모국어인 터키어를 그리스 문자로 표기하는 등 [[그리스/문화|그리스 문화]]와 [[튀르키예/문화|튀르키예 문화]] 사이에 걸쳐 있었다.]이 강제 이민당하여 오늘날 이 지역에서는 그리스인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사용 언어가 아닌 종교로 추방했기 때문에, 현재에도 폰토스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어르신들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걸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볼 수 없는 게 폰토스 민병대가 트라브존 지역에서 벌인 학살과 약탈은 유럽 승전국들 언론까지도 엄청 욕할 정도로 악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경쟁 및 원한 관계가 있었던 [[아르메니아인]]들까지 덩달아 약탈과 학살도 당했고, 심지어 그리스계 [[혼혈]]이라든지 비 이슬람 소수계까지 학살 및 약탈당했다. 덕분에 이들은 철저히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군을 지지해 이 와중에 그리스인들이 보복으로 학살당해 왔는데, 워낙에 그리스가 저지른 일도 악랄했고 증거들이 남아서 현재 그리스는 아르메니아처럼 학살이라고 튀르키예를 비난하지 못한다. 물론 그리스 극우들이야 튀르키예 측 학살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적으로 씨알도 안 먹힌다. [[케말 아타튀르크]]와 [[이스메트 이뇌뉘]]는 [[그리스군]]이 벌인 학살 현장을 사진 및 여러 증거로 국제적으로 알렸고,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신문에서도 불바다가 된 트라브존에서 폰토스 그리스 민병대에게 학살된 시체들을 보도했다. 지금도 트라브존 지역 역사 박물관에선 당시 그리스군이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트라브존 사진과 당시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퇴거했지만, 그리스인들이 남겨 놓은 트라페준타 제국 시절 문화유산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http://byzantine7.egloos.com/52143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